A photo from Chiloe

생각들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껏해야 영화 한편 보는 게 고작인데 기를 쓰고 주말마다 서울을 다녀오는 이유는 뭘까…

이 곳의 글도 이제 좀처럼 괜찮은 영화나 책의 좋은 구절이 아니면 트리거가 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괜히 좀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이 무척이나 연말같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 인 거 같다.

 

인간(혹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늘 감탄할 뭔가를 찾아헤매는 욕구가 점점 사라지는 건

그맘때나 저맘때나 비슷비슷한데

부쩍 지친다.

 

유성 어느 공영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는 길은 바로 계룡 가는 길인데

미련없이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에 떠나는 여행은

흔한 주말 서울행의 수십배에 해당 할 비용을 치를거다.

그저 온전히 떨어져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 기적

일본에 처음으로 닿은지 정확히 십년이 지났다.

어떻게 하면 최소폭으로 인간과 자전거와 자동차가 접촉없이 다닐 수 있을까를 연구한 결과로 나온듯한 그 일본의 길들과,

한없이 넋놓고 기다려도 아깝지 않을 기차길 앞 건널목,

건조한 사람들 그리고 두텁던 공기들.

화산이 코 앞에서 재를 뿌려대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들.

 

‘난 아무 얘기도 안 했어, 가족대신 세계를 택했어.’

마치 이 한마디를 위해서

가족의 이야기를 실컷 늘어놓고 하고

적당한 유머로 분위기로 환기시켜도 보고

때론 짐짓 어른인척 하면서 두 시간을 달려온 기분이다.

어쩌면 감독도 저 말을 어쩌면 손발 안 오그라들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지 않았을까?

기분 탓인지 세상 돌아가는 꼴이 그래서인지

저 말은 마치 일본에 대한 위로 같다.

 

아주 짧은 생활이었지만 그 6개월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그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기차를 보기 위해 올라간 그 슈퍼. 그 곳이 ‘저스코’였다는 걸 알아채리지 못했다면 말이다.

한밤

나가수의 박정현의 노래

청춘을 생각하게 하는 박형준의 시들

잠들기 힘든 밤.

그리고 저 시인은 지층에 살면서 저렇게 멋진 시들을 남겼는데…

지층이라는 주소에서 오래 살았다…
가난이 있어 나는 지구의 이방인이었다…
내 영혼은 어떤 나무로 다음 생에 지구에 서 있을 것인가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것이다

창문이 모두 깨져버린
재개발 지역의 집들은 햇빛 속에서도
자기 안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선 바람 또한 세계의 임시 존재일 뿐…

지나가는 행인 하나 없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재개발 지역의 집들은
햇빛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내부로 눈을 돌려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자신의 상을 빚느라 여념이 없다.

잃어버린 눈 안쪽에
스스로를 견고한 고독으로 채워간다.

내가 사는 피부

살짝 배신감…

사실 위로가 좀 필요했다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알모도바르를 택했다

늘 그랬듯이 관계에서 오는 위안…쉴새 없이 들리는 스페인어의 따뜻한 어감같은 것을 얻고 싶었었다.

십오분간 혼란스러웠고 다음의 대략 두시간 동안은 뒤에 앉아 있는 수녀분들 표정을 상상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셈인데

좋긴 한데 기대밖이라 역시 배신감을 떨출 수는 없다.

고전적이고 포스트모던하면서도 철저히 모던한 복수극인데

간결함이 참 좋았다

화자의 심정에 따라 영화가 어떻게 다르게 보여지는지가 궁금하다면
궁상제작소

8월의 크리스마스

지금은 아마도 없어진 신사역의 어느 영화관의 제일 앞자리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이상하리만치 또렷하다.

그 때가 대학 초년생 시절이었는데…

아직도 좀 그런 날이면 오래된 가요를 틀어놓듯 이 영화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곤 한다.

영화의 초입부, 텅빈 운동장에서 나긋이 혼자말을 내뱉듯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는 한석규의 나래이션은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어제 사라져버린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서인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었다.

 

그리고 기형도가 29살에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가 누구든 엄청난 추억을 나는 지불하리라

Holiday

대전에서 오랜만에 주말을 보냈다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왕가위 영화를 처음으로 보았다

‘그녀에게’에 나왔던 비둘기 음악이 영화의 초반부에 나온다

큰 화면으로 보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촬영과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공간이 너무나 멋있게 어우러졌다

 

마실나가는 길에 정은임의 라디오를 듣다가 장국영에 대한 얘기가 우연히 나왔다

정은임이 죽은 이(장국영)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참 묘하다고 말하는데,

결국 나는 세상에 없는 ‘두’사람의 목소리를 오늘 들은 셈이다

 

영화의 말미는 홍콩이 아닌 대만에서 끝나는데

그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남은 장국영의 부재가 좀 더 안타깝다

 

Bar Sur 카페 앞에서 흑백의 장국영을 한번쯤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회한

송년회가 끝이 났다.

송년회 중에 잠깐 한마디 할 시간이 있었는데,

얘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지난 시간을 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유없이 아주 조금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아무도 못 알아채게 하느라 땀 좀 흘렸다.

 

올 한해는 참 낯설은 삶을 살았다.

다시는 못해 볼 그런 여러 결정들을 했고

그 결정사이의 행간에는 수많은 잠 못든 밤이 있었다.

어쩌면 깜냥이상으로 많이 애썼고 그 이상으로 회한이 많이 들은 셈이다.

 

송년회가 힘겹게 끝이 나고 스스로에 대한 위로의 의미로 노은역에 있는 커피숍에 들렀다.

어쩌면 그냥 한없이 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